강릉 피득령 안반데기
전부순 Jeon boosoon
하늘 아래 첫 동네,
땅의 울림이 하늘에 스미는 곳
강원도 평창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큰 고개는 대관령이다. 그런데 평창군과 강릉시 경계에 자리한 피득령도 강릉을 잇는다. 게다가 ‘안반데기’라는 재미있는 산골마을까지 품고 있다.

횡계 용평리조트 입구에서 도암댐 쪽으로 약 7㎞쯤을 가다보면 ‘강릉 대기4리 안반덕’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눈이 많이 오신 관계로 근방에 주차하고 발목이 빠지는 눈길(2.7㎞)을 오르는 동안 멧돼지를 비롯한 여러 산짐승의 발자국을 관찰할 수 있다. 약 40여 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안반데기의 역사를 알려주는 역사관, 그러나 인적이 드문 탓인지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그 오른쪽으로 거대한 풍차가 우뚝 서있는 아래로 광활한 구릉이 펼쳐진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생활권은 평창(횡계)에 속한 안반데기는 안반덕의 강릉 사투리로서 피득령 정상에 위치해 있다. ‘안반’이란 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을, ‘덕’은 고원의 평평한 지형을 의미하여 ‘이 일대 고원지대가 떡메 판처럼 평평하다’해서 얻은 이름이다.

안반데기는 피득령을 중심으로 남쪽 옥녀봉(1146m)과 북쪽 고루포기산(1238m)을 좌우에 두고 각각 99만㎡씩 모두 198만㎡의 너른 구릉(밭)이 독수리 날개처럼 펼쳐졌다. 거대한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어 풍력발전기와 함께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주는데, 국내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 중 가장 높다(해발 1,100m). 그러나 이곳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96년 잠수함으로 침투한 북한 간첩이 여기서 하룻밤을 지냈을 만큼 오지여서 지금도 마을에는 ‘수상한 사람을 보면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하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굽이굽이 화전민들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피득령, 사료전시관 앞에서 옥녀봉을 향해 워킹 트레일을 떠난다.

눈 쌓인 길은 처음부터 된비알이다. ‘뽀드득∼!’ 눈발을 밟으면서 오르는 길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음은 발왕산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때문이다. 눈발을 날리며 대지를 희롱하는 모습이 마치 저 혼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처절한 몸짓처럼 보이고, 눈이 녹고 얼기를 반복한 볕바른 자락에 살짝 쌓여 있는 눈들이 역광을 받아 별처럼 반짝인다. 산꼭대기부터 펼쳐진 넓은 채소밭에 하얀 솜이불이 덮여서 설국에 온 듯한 순백설원에는 이미 무수한 발자국들이 수를 놓고 있다. 문득 서산대사가 읊은 시가 생각난다.

눈 덮인 들판을 지날 때 어지럽게 걷지 마라,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삶은 한 조각 구름의 일어남이고 죽음은 구름의 사라짐이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뜬 구름은 실체가 없으니 삶과 죽음 오고 감 또한 이와 같도다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두 대의 풍력 발전기를 지나 옥녀봉 정상에 닿으니 안반데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구릉지에서 하늘 아래 첫 동네답게 푸른 하늘과 맞닿은 하얀 능선이 포물선을 그리고, 풍차의 바람개비가 ‘웅∼웅∼’ 바람을 가르면 도화지 같은 하얀 능선을 넘으면 또 다른 구릉을 마주하며 저 멀리 고루포기산까지 파노라마로 이어간다.

능선(밭)은 대부분 경사가 매우 심하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에게는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나있다. 겨울철에나 볼 수 있는 순백의 ‘선’(線)은 평평하지 않고 굴곡이 심한 ‘S’ 라인이다. 그런데 카메라 앵글에 담기에 다소 벅찬 감이 드는 건 화전민들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안반데기는 3공화국 초기시절인 1965년부터 조성됐다. 국유지--무성한 잡목과 자갈 깔린 땅을 개간하기 위해 정부는 강원도 산간지대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에게 ‘개간한 땅은 나눠 준다’는 제안을 했다. 산에 불을 질러 농사짓던 화전민들은 어린 자녀들을 앞세우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와서 이곳에 정착, 돌산을 개간하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차근차근 일궈 나갔다. 그러나 넓은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을 터. 나무 등걸을 뽑고 돌을 캐내는 것은 물론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길이 끊겨 고립되는 게 다반사였다. 특히 먹을 것이 모자라 가을에 주워놓은 도토리까지 떨어지면 헬리콥터로 공수된 밀가루와 보리에 의지하며 불모지를 어엿하게 비옥한 땅으로 만들었다. 물론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난 사람들도 많았지만, 남은 자들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화전민들의 노력은 자기 땅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컸기 때문이다. 힘들게 개간한 땅에 감자를 심고 호밀을 가꾸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의 기쁘고 벅찬 감정은 다시 1986년에 이르러 상승세를 탄다. 정부가 경작자들에게 땅을 매각하였고, 현재 20여 농가가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며 태백 매봉산 귀네미마을과 정선 미탄의 육백마지기와 더불어 안반데기는 우리나라 3대 고랭지 채소밭으로 부농을 과시한다.

경사가 너무 심해 기계농은 불가능하여 소와 동고동락하며 땅을 갈았다. 봄-가을은 호밀과 감자로, 여름은 채소밭으로 초록 풍요를 일구었고, 겨울은 바람개비 풍차와 어울린 설경이 연출되어 일 년 내내 다양한 풍경을 담은 ‘복 받은 땅’으로 변모했다. 재밌는 사실은 겨울철에는 도시 사람들이 아름다운 설경을 즐기려고 일부로 이곳을 찾는 반면에 안반데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겨울은 춥고 사람 키를 넘을 만큼 눈이 많이 오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밭일을 하던 우공들은? 몇 년 전까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구정면 구정리 농가에 별도로 ‘하숙’을 시켰다는데, 한 달 하숙비가 마리당 30만원 남짓했다나.

하늘에 맞닿은 땅의 소리가 하늘에 스미고,
하늘 소리는 구릉에 가득할 법도 한데
땀에 절어 노동을 먹고 자란 땅
소금 같은 설국이 들어섰다.
예부터 곤궁과 빈한한 삶은
죽은 목숨처럼 산으로 기어들었다
목 좋은 곳을 차지한 놈은 화적질하고
비탈에 숨은 자는 화전민이 됐다지.
애먼 산에 불 지르지 말고
조용히 땅을 갈아먹으라는 나라님 영에 따라
피땀과 눈물범벅되어 모여든 자리
잠시 ‘내 것’이 된 드넓은 초지와 바람 따라
눈 뜨고 달려가 팔 벌려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번잡한 거리에서 애써 ‘쉼터’를 찾으려던
옹색한 고민을 바람에 쉬이 날려 보낸다.

옥녀봉에서 내려와 안반데기로 들어선다. 중간 중간 예쁜 집들이 보였으나 인기척이 없다. 배추 출하를 마치면 바로 동절기에 접어들기에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다시 들어온다는 말을 실감하며 터벅터벅 조심스레 내딛는 발길이 다시 길을 떠난 처음 자리로 되돌아 왔다.

구름이 머무는 마을에서 화전민들의 개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고단한 삶을 담은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통나무와 흙으로 지은 운유촌(雲留村)을 둘러본 뒤 다시 동쪽 산등성이를 올라 멍에전망대로 향한다.
애초에는 산이었던 곳은 사방이 온통 밭으로 변했다. 안반데기에서 재배한 감자나 배추는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달아 수확 전에 이비 밭뙈기로 팔려나간단다.
그러나 산을 깎아 개간한 바람에 큰비가 내리면 정상부터 토사가 급격하게 쓸려 내려간다. 토사에는 각종 비료와 농약 성분이 포함되어 2차 오염원이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쓸려온 토사는 계곡을 따라 대기천으로 흘러들고, 또 송천을 만나면서 동강으로 스며들어 한강의 최상류가 각종 오염원에 노출되어 있어 주변의 도암댐과 함께 풀어야 할 환경숙제로 남아있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농로를 따르니 어느새 멍에전망대다. 멍에는 소가 밭을 갈 때 쓰는 보구래(쟁기)의 한 부분, 지난 날 소와 한 몸이 되어 척박한 땅을 일구던 화전민들의 애환과 개척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간하면서 나온 돌로 성처럼 담을 둘러 전망대를 세웠다. 잠시 팔각정 안에서 바람을 피하며 동쪽을 내려다보니 강릉 시내가 아스라하다. 날이 너무 맑아서였을까. 멀리 동해바다가 쪽빛하늘과 맞닿아 묘한 서정을 자아낸다.

반복된 일상에 지치고 수많은 선택에 갈등하면서 고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고단한 마음과 후회, 두려움을 툴툴 털어내고 편히 쉴 수 있는치유의쉼터가 이곳이다. 겨울철 설경을 감상하며 가슴 깊숙이 바람을 품고 뚜벅뚜벅 걷는 안반데기, 작은 시름 한 자락 쉬이 내려놓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이전글이 없습니다. 고너그라트 마터호른 트래킹
No Title Date
2 고너그라트 마터호른 트래킹 2014-11-04
강릉 피득령 안반데기 2013-03-21
소개/연혁/입회신청
전국지회/회원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kang jae gu
Kwoun Joung Yeoul
Kim Ki Hoon
Kim wanki
kim in kyung
Kim jaeheon
Kim Jong Beom
Kim taeeun
kim pyoung ki
kim pilyeon
Kim, Ho Young
Moon yongbaek
Park jae hong
Park taekyoon
Taejung, Park
BAEK JI HYUN
Shin Myeong-Sook
Shin Hyun Soon
Ahn jangheon
Ryu jea youn
LEE KYUNG JA
LEE DONG JOON
LEE SANGTAE
lee seung jin
LEE JUNG HOON
Lee choul jib
Jeon boosoon
Chung gunyoung
Jin young gab
Choi Byeongho
Choi jin yeun
Ham kilsoo
Her aeyoung
next
작가갤러리 회원갤러리
교육일정 공지/신청
문서자료
정기촬영 공지/신청
작가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