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백오 이해선(白烏 李海善) 선생이 작고하기 몇 해 전에 펴낸 유일한 사진첩(1980, 비매품)을 들춰 보면서 ‘사진작품’에 대한 선생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즉 “사진예술이란(…) 사실적인 표현이어야 하되, 그것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감성적 해석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예술적인 승화를 꾀해야 한다는 신조로서 나 나름대로 활동을 꾸준히 펴왔습니다”라고.

선생은 그 사진첩의 주제를 ‘향토 풍물’이라고 밝혀 놓았다. 작가의 주장대로 거기에는 우리 일상 주변의 사람과 사물이 단아한 정경으로 새겨져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잎들, 마당에 널린 탐스런 과일과 꽃소식으로 고궁의 봄을 알리는 함초롬한 꽃망울은 물론이고 빨랫줄에 널린 홑청에서도 언뜻언뜻 눈부신 역광이 책장을 환하게 밝혀준다.

이렇게 대격변기이던 이 시기에 선생의 개성적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시선이 겨냥한 것은 향토적 서정에 흠뻑 취한 다소곳한 정경이다. 따사로운 햇살처럼 온화한 생활에 던지는 이러한 시선은 거대한 참화를 치루고 난 지난 세기 1940-50년대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던 조류였다.

그런데 ‘향토 풍물’이라는 정서는 요즘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소재를 이르는 것처럼 안이한 어감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았고, 고된 시련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그 시대적 분위기에서 ‘향토 풍물’이라는 말의 함의가 오늘날의 복고적 취향처럼 가벼이 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서구와 일본의 문물이 담긴 사진만을 구경하던 시절의 우리 것을 사진 속에서 확인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었음직하다. 일제 식민지로서 일본인 사진가들이 관찰하고 기록하고 엽서 등으로 널리 유통시킨 조국의 이미지와 다르게 해방 정국의 사진가들이 천착한 우리네 향토 풍물은 남의 시선을 받은 구경거리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일부로서 익숙한 모습이었던 만큼 애틋한 정겨움의 느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선생의 사후 스무 몇 해를 넘긴 지금, 다시 그의 원판에서 끌어낸 이 사진들의 그 전의 사진첩의 음영의 대조에 따른 이관된 심미안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다른 점이 없지 않다. 우리는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의 과거의 사진첩에서 작가가 배제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아마 이번에 공개되는 것들은 ‘감성적 해적으로 재창조되었다기보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재현했기’ 때문에 예술적 승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내심 제쳐 두었던 것일지 모른다. 작가로서는 사실적 표현dl 지나치게 싱겁거나 거칠다고 느낀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평범해 보이는 현식의 장면들, 작가의 개성적 시야가 외면한 장면이야말로 다름 아닌 우리가 공유했던 것이지만 종종 사진에 새겨지지 못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즈를 취하고 앉은 모델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가들이 밀집한 사진을 보자. 카메라는 당시 막 보급된 일종의 첨단병기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노출계를 붙ㅌ인 라이카, 콘탁스, 눈이 두 개 달린 롤라이플렉스와 보이틀랜더 등, 화면은 당시 최고급 기종들이 한껏 멋을 부리는 또다른 수입품 전시장이다. ‘직업’ 모델과 ‘아마추어’ 사진가가 빚어내는 이 즐거운 외출은 여유 있는 계층의 여가활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한 편의 풍속화일 수밖에 없다. 카메라의 수입과 더불어 ‘모델’이라는 전대미문의 직업이 탄생하고, 또 아마추어 사진가라는 새로운 집단도 등장했다. 사진은 이렇게 해외에서 쏟아져 들어온 ‘모더니즘’의 깜찍한 총아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유롭고 직업적 의무감에 구애받지 않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활동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무모하거나 무익하지만을 않았다. 사회적 쓰임새에 대한 목표가 뚜렷했던 직업 사진가들의 작업에 비해 개인적 취미활동으로서 사진은 사진의 표현영역을 넓히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의 본령에도 깊은 자취를 남겼다. 아마추어 사진가는 흔히 ‘프로’사진가의 시각과 수법을 모방하지만, 때때로 상괘를 벗어나거나 심지어 실수 같은 것을 통해서도 당대의 지배적 관점이나 논지를 뛰어넘는 창의적 안목을 발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연한 행운과 무심한 소득 또한 역사만이 과시할 수 있는 위엄이자 역사만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교훈일 것이다. 역사는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의 틀 밖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아마추어와 ‘재야’ 작가들이 세월이 지난 뒤에는 자기 시대의 권위에 함몰된 전문적 작가들보다 더 흥미로운 작업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일은 먼나라의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일찍이(취미활동에 대해 ‘공식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썩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선생은 1936년에 ‘경성아마추어카메라구락부’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아마추어 사진의 주춧돌을 놓고 그 저변 확대에 큰 몫을 했던 위상은 분명 재평가 되어야 한다.

사진이라는 도구의 용도와 궁극적 지향점에 대해서 각기 다른 방법을 모색하던 이 시기의 작가의 개인적 취향은 소박한 개성에 머물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것은 다른 많은 사진가들의 관념과 수법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가던 외국 사조에 대한 체험을 넘어서, 이 사진 1세대의 작가들은 우리 나름의 고유한 사진에 대해 고민했음이 분명하다. 그의 시대에는 ‘포토제닉’한 대상에 대한 기존의 상투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오직 기왕에 알려진 외국 사진의 이미지로서만 있었다,

우리의 소재를 앞에 두고 그러한 전범이나 상투형이 제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민통지를 거치는 동안 일본 사진계의 영향과 참조가 결정적이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는 없겠지만, 이제 사진가들 또한 해방된 세상을 앞에 두고서 그 모습에 성공적 사진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포토제닉’한 면모를 부여하고자 애썼을 법하다. 또 거기에 작가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조형적 표현의 욕구를 투영하고 ‘그림 같은’ 사진의 전범을 이루고자 했을 것이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당시 제한된 교통수단 때문에 함께 버스를 세내어 촬영하러 나들이하는 일이 불가피한 관행이었다. 그래서 소재와수법의 유사성이 더욱 두드러지기 마련이었다. 혼자, 멀리 오지를 찾아 촬영을 위한 여행과 모험에 나설 수 있는 요기만으로도 개성적인 사진 ‘작품’을 할 수 있었다고 자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멀리 있는 곳의 모습을 가져오는 것, 발로 뛰어 현장을 찾아 나서고, 숨어 있는 현실을 목격하는 것은 사진에서 ‘눈의 몫’에 버금가게 ‘발의 몫’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였다. 가장 새롭고 현대적인 도구로 가장 오래고 예스런 삶을 추적한다는 것은 사진의 세계에서 진작부터 기본적 전통이었다.

이런 선도적 세대의 영향은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 대다수 작가들 사이에서 풍부하게 나타나며, 또 우리 사진계의 사진을 보는 눈과 그 담화를 지배했고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또 선생 자신의 일정한 창작활동 못지않게 각종 사진 공모전에서 심사위원과 고문으로서 펼쳤던 활약은 한국사진의 성격과 방향을 잡아가는 데에 매우 의미심장한 ‘아카데미즘’을 확립하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 했을 것이다.

특히 작가가 우리의 고궁을 섭렵한 작업은(『한국의 고궁』, 1980,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발간) 선구적이다. 향토의 민중 풍습을 기록하는 것과 나란히 굳건하게 버티는 전통문화의 뼈대를 영상화하려는 관심을 거의 아무도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던 만큼 선생의 작업은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실 우리의 사진문화는 기이하게 순서가 뒤바뀐 모습을 보이고는 했는데, 이는 다른 사회생활이나 문화 일반에서도 목격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급격한 서구화가 곧 현대화를 의미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적·소비적·대도시적 사회생활의 초기적 체험을 껑충 건너뛰어 가장 첨단적인 문물과 문화적 성과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문화에서 치명적 공백 같은 것으로 작용했을지, 바람직한 도약이나 월반 같은 것으로 작용했을지는 아직 파단하기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사진을 개발한 서구에서 그 폭넓은 사용과 다양한 표현에 비해 상당히 축소된 일부분의 경향만이 횡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해외에서의 가장 최근의 경향을 재빠르게 수용하는 태도는 종종 가장 기초적이며 결정적인 경향을 비껴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구에서 사진이 발명되고 개발된 여러 요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예술작품의 복제’였다. 이 대량적 이미지 복제술이 우리의 보편적 인식과 관점과 더 나아가 인간 문명과 가치에 초래한 변화는 이미 많은 이들의 성찰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인간의 문화와 역사가 사진 덕분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되는 과정에서 사진은 특히 전통문화의 보급과 향수에 어떤 식으로든 관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동문화의 사실에 주목하거나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거나 간에, 아무튼 그 사진적 재현은 우리가 그러한 전통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물론 선생은 고적과 유물을 그 전모보다는 햇빛에 부각되는 그 웅자의 일부를 드러내 보여준 편이었다. 그런데 그 실루엣과 강렬한 음영을 넘어서 그 전모에 접근해 들어가는 사진작업도 아직도 극히 드물 뿐이다.

선생이 스케치한 지난 50여 년 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변화’의 와중에 첫발을 들여놓던 그 운명적 변화의 폭풍 속으로 말려 들어가기 직전에 고요하게 숨죽이고 있는 생물처럼 보인다. 우리는 서울의 ‘스카이 라인’과 그 주변의 농경적인 주거와 생활방식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어째서 그렇게 바뀌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지침들이 사진들 속에 숨어 있음을 본다. 사람들의 복장과 거리의 탈것들과 붓글씨의 구수하고도 빼어난 필치로 새겨진 간판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영문자의 등장도 모두가 변화의 불가피성을 예언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부분들은 선생의 시선을 끌었던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우리의 시선으로 전해진다. 아마 후배 작가들은 이런 아련하게 눈부신 빛과 그림자 사이로 들어가 그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곳을 들춰내곤 했을 것이다.

다시금 선생의 사진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히 한 도시로 탈바꿈하기 이전의 서울 중심과 주변의 모습이다. 청계천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감개무량해 하는 이 시점에서 들여다보는 이 사진이 예사로울 수는 없다. 도심과 변두리에서, 수표교를 비롯한 청계천 다리들을 오가는 사람들과 그 아래를 흐르는 물은 말할 것도 없고, 한강과 북한산 자락과 경복궁 근처의 크고 작은 시내와 개천에서 멱을 감고 즐기는 인파와 아이들은 오염되지 않은 시절의 서울에 대한 깊은 향수를 훌쩍 넘어, 지난 반세기 동안의 변화가 얼마나 전격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담담하고 포근한 시선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각자의 어린 시절이나 바로 엊그제의 삶의 터전을 전혀 되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청계천 복원이 시사하듯이, 또는 선생의 사진에서 방치된 유적들이 말해 주듯이, 문화재나 환경의 복원을 명분으로 내세운 황급한 재개발 또한 우리의 기억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복원은 역사를 되살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죽이기도 한다. 개발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토록 다급하게 어제의 생활터전을 깨끗하게 소탕하는 나라도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조급하고 인위적인 재개발은 과거 우리 삶의 자취를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그 과거의 완전한 상실을 부추길 뿐이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밑거름이 아니라 완전하게 제거되는 자리가 되어 버리고 있는 지금, 우리의 기억은 사진 속에서나 그 정체를 확인한다. 기억이 까마득한 것이 되지 않고 어느 정도 참모습을 찾는 것은 그 현장과 함께할 때라고 한다면, 현장에서 확인될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백일몽과 비슷해질 것이다. 우리가 기억을 되살릴 자리를 잃고 헤매는 동안, 오직 사진만이 우리의 건망증을 보완해 줄 것이다. 우리가 살던 집과 동네와 고향의 모습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 당분간 우리의 기억은 사진 속에서만 고향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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